지식의 회전목마

2021년 1월 1일 5777자 완독 4분 소요

광장에서 다섯 해 가까이 시달렸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몸과 마음만 잔뜩 망가졌다. 사람들은 나를 눈엣가시로 생각하였다. 훈련소에서는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중대장이 나를 따로 불러 부디 조용히 지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에 반해 바깥세상은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기회를 보아 도망쳤고, 이제부터는 고상한 이야기나 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였다. 정치 이야기라면 신물이 났다. 광장으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미학을 다섯 해 공부했다. 졸업을 했지만 남아 있는 지식은 단 한 줌도 없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노라고 솔직히 고백하면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긴 해도 배운 놈의 장난질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이내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바보 같은 질문에 시달리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예술에 소질이 없었다.

철학과로 전학을 했다. 세부 전공을 결정해야 했는데 배운 것이 도둑질이니 아는 범위에서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예술철학을 할 수는 없어 정치철학을 선택했다. 그렇게 다섯 해를 지낸 다음부터 사는 일이 조금 고단해졌다. 철학에 무지하다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정치를 모른다고 대답하면 대번에 난리가 났다. 나는 탈출구를 찾아야 했고, “정치에 철학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라는 점잖은 답변을 개발해냈다. 열에 아홉은 이 대답을 듣고 퍽 만족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 로티Richard Rorty라는 철학자에게 호감을 느껴 논문을 세 편이나 썼는데, 이 사람이 미국에서는 빨갱이the leftist로 알려진 양반이었다. 아이비리그에서 좋아할 턱이 없었다. 나는 큰 장학금을 두 개나 거머쥐고도 스무 개 남짓한 학교에 모조리 불합격했다. 입학 제안을 한 것은 단 하나, 교표조차 시뻘건 뉴스쿨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이라는 생소한 대학이었다. 나는 실망하여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정치와 예술과 학문이 서로 공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야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나는 어렸고, 세상 모든 것이 순수하게만 보이던 시절이었다. 특히나 학문의 영역은 순백의 배경 위에 곱게 덧칠되어 그 티끌마저 파스텔 톤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로티를 공부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주류 철학을 공격한다는 이유만으로, 로티는 미국의 주류 철학계에서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논의에서 생산적인 지점을 찾아내려는 어떠한 시도도 전통 철학에 대한 불온한 항명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철학계 내부의 정치적 공작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로티를 읽었다는 죄를 뒤집어쓴 채, 무슨 말이나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철학계는 내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영역이 되고 말았다.

사실 로티는 이미 오래전부터 철학적 담론이 정치적이라는 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내가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반면 철학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담론이라는 말은 철학자들이 찾으려 덤비던 영원불멸의 “진리the Truth” 따위를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밥줄 끊어지는 소리를 철학자라 자처하는 어느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그것은 철학으로 밥 먹고 살아가 보려 했던 어린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든 일이 땅따먹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나는 공부를 그만두었다. 예술은 하늘 아래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철학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철학마저도 사실은 하늘 위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땅에서는 철학 그 자신의 자리매김을 위해 철학자들끼리 드잡이질을 붙이고 있는 것이라면, 대체 그런 철학이 흙수저들을 구제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 차라리 예술은 근본부터 정치적이다. 시대의 테마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사조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나는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술에 소질은 없지만 예술가가 되어 보기로 결심하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로티의 의중과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그의 의도는 예술로 사람들의 내면을 고양하여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담론을 세련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로티는 그러한 과정을 널찍하게 묶어서 철학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정치에서 출발한 나의 회전목마는 예술과 학문을 거쳐 다시금 정치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내 생애 두 번째 광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사문단 21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