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소울>은 멋진 영화다. 오늘은 할 말이 좀 많다. ‘스포’ 없이 쓰겠다.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면 쉽사리 독해될 것이다.
1.
“대중에게 예술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예술이 대단히 졸렬하든지 또는 차라리 아예 예술이 아니든지 둘 중에 하나 때문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톨스토이,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Lev Tolstoy의 입장은 예술을 정의하는 여러 이론 중에서도 상당히 구닥다리 견해에 속한다. 이른바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것으로, 이런 식이다.
“만일 작품이 예술로서 훌륭한 것이라면 … 예술가에 의해서 나타난 감정은 타인에게 전달된다. 타인에게 전달되면 타인은 이를 체험함으로써 설명 따위는 없어도 되는 것이다.”
“관중이나 청중이 작자가 경험한 것과 같은 느낌에 감염되기만 하면 그것으로 예술이 되는 것이다.”
나이브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입장을 지지한다.
2.
현대예술을 싫어한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은 거부감이 있었다. 그 기저의 지적 허영 내지 허세를 진즉에 감지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몰랐기 때문에 싫어했던 것이고, 십 년을 공부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며, 그래서 여전히 싫어한다. 십 년이나 공부했는데 알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대상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현대철학도 싫어한다. 물론 나는 현대철학 전공자다. 국수를 싫어한다고 국수 장사를 못할 이유는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직업윤리의 문제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구성할 수 있다. ‘현대’가 단순히 시계열 상의 어휘만은 아니라는 점도 있다. 나는 현대철학도이자 반-현대철학도다.
반대로 현대과학은 대중에게 자꾸만 집적대는 통에 꼴이 우습게 되어 버렸다. 사람들에게 천당을 보여주겠다고 덤볐던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우주의 지평선 부근에서 천당 비슷한 것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계산으로 거리가 150억 광년쯤 되었다. 빛의 속도로 150억 년이 걸리는 것이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으니까, 결국 진시황도, 람세스 2세도, ‘테스 형’도, 심지어는 예수님도 아직 열심히 신국神國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 된다. (아직 반의반도 못 갔다!) 아니면 빛보다 빠른 존재라는 개념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 포털portal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웃프닝이다. 유물론도 이쯤 되면 사기이고 사이비다.
3.
유물론有物論은 물리주의materialism로도 번역된다. 강한 형태의 물리주의는 마음이나 영혼 같은 것은 없다고 단정 짓는다. 마음이 없다니, 생각은 누가 하는가? 몸이 한다. ‘뇌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이고 전기적인 신호의 총체’가 바로 생각이다. “사랑합니다”가 아니다. “당신을 보고 제 뇌는 L-0v2의 상태에 놓여서 심장박동수를 증가시켰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야 이 씨벌롬아”가 아니다. “제 뇌가 F-uck의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공격성이 18 증가했습니다. 아마도 직전 2분간 당신이 한 행동에서 유발된 것 같군요.”가 옳은 표현이다.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고 생각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쯤 되면 낭만이고 뭐고 없다. ‘갬성’을 좀 남기기 위해서 ‘약한’ 물리주의로 가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만만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약한 물리주의가 마음이나 영혼 비슷한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맞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아니다. 귀신 같은 게 막 물리적인 실체가 있어서 말도 하고 뛰어다니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거다. 이해시키기 어려우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빈티지 18년 이상의 숙성된 먹물통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굳이 알려고 할 필요 없다.
귀신들이 뛰어다니는 세계는 아쉽지만 학적學的 세계에는 없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우리는 사이비 유물론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낭만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책이다.
4.
공돌이와 문돌이의 이상적인 콜라보를 제리Jerry에게서 본다. “우주상의 모든 점을 양자화한 총체”라니. 이런 〈빅뱅 이론Big Bang Theory〉1식 개그를 중기 입체파식 화풍에 버무려서 제리와 테리Terry를 만들어 낸다. 이름이 왜 그따위인지는 잘 모르겠다. 신Jesus과 악마saTan의 대비이려나. 제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놈도 제리, 저놈도 제리다. 실제로는 한 몸인 셈이다. 테리는 혼자다. 본래 사탄도 우주상의 모든 악惡을 양자화한 총체는 아니다. 그냥 외로워서 비뚤어진 녀석일 따름이다. 그래서 칭찬해주면 좋아한다. 의외로 다루기 쉬운 녀석이다.
5.
소울soul은 ‘영혼’으로 번역하면 맞을 것이다. 본래 물리적 세계에서 말하고 뛰어다니는 정신은 ‘귀신ghost’이다. 중립적인 번역어는 ‘유령’이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원제도 “Ghost”였다. 여기서는 또 ‘Ghost’를 ‘영혼’으로 번역했다. 정확한 번역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영혼’ 쪽이 영화의 맥락상 우리 직관과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Soul”은 ‘영혼’으로 번역하지 않고 놓아둔 것일까?
영혼을 의미하는 영단어에는 soul과 spirit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재미있다. ‘영혼’도 soul과 spirit이고, ‘혼령’도 soul과 spirit이고, ‘혼’도 ‘넋’도 모조리 soul과 spirit이라고 한다. 실상 ‘혼魂’이란 것은 귀신鬼이 구름云처럼 떠도는 것이고, ‘영靈’이란 비雨처럼 떨어지는霝 것이라서 ‘혼’은 사람 쪽에, ‘영’은 신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혼’은 soul로, ‘영’은 spirit으로 보다 적절히 환치되지 않을까 하는데, 당연히도 완전한 대치어라고 볼 수는 없다.
비슷한 개념어로 ‘백魄’이라는 것도 있다. ‘혼’이나 ‘기氣’ 따위와 함께 사용하고, ‘영’과는 조합하지 않는다. 구전 상으로는 사람이 죽으면 혼은 구름처럼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지상에 머무른다고 한다. 영어에서 백을 대신할 만큼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기껏해야 ghost 정도일 텐데, 직관적으로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동양의 독특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영화의 제목인 “Soul”을 “혼”으로 번역하면 될까? 이것은 어려운 문제다. 두 단어 모두 특정 상황에서의 마음의 상태와 전반적인 삶의 양식을 함께 아우르는데, 그 기원과 맥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soul”을 발음하면 곧바로 ‘흑형’이 시야에 들어온다. “혼”을 발음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6.
이상하게도 미국 음악은 흑형African-American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재즈가 그러하다. 물론 그 기원은 백 퍼센트 흑형들에게 있다. 여러 이론이 분분하지만, 재즈의 흑형 기원설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즉흥성이 어디서 나오는지가 주된 쟁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악보를 구할 수도 볼 수도 없었던 노예 생활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혹독한 노예 시절, 찬송가는 흑인들을 정신적으로나마 해방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집회는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정식 교육을 받은 사제는 아주 드물게만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흑인들은 짬짬이 찬송가를 불렀지만 대체로는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고, 많이들 틀렸을 것이며, 결국 여럿의 기억을 조화시키는 화성적 즉흥성이 탄생한 것 아닐까. 뭐, 그냥 내 생각이다. 학계에서는 아주 마이너한 관점이다.
soul이 있어야만 즉흥 연주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즉흥 연주를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soul로 충만해 있다, 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역사적 맥락과 묘하게 맞물려서 흑형들에게는 이 soul이 넘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근거 없는 직관은 아니다. 실제로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중에는 악보를 못 읽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음표 대신 soul로 연주한 셈이다.
7.
soul에 대한 미국인들이 또 다른 직관이 있다. ‘백인’인 ‘여성’이 soul과는 거리가 멀다는 직관이 그것이다. 금발 여성에 대한 편견처럼 만들어진 신화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시스터 액트Sister Act〉2에서는 ‘흑인’ 여성이 목소리를 내고 〈위플래쉬Whiplash〉3에서는 백인 ‘남성’이 활약하는 것이다. 백인 여성을 내세운 soul 영화? 난 아직 본 적이 없다. 〈스윙걸즈スウィングガールズ, Swing Girls〉4에 살짝 위화감이 드는 것을 보면 나 역시 약간은 이 편견에 젖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하필 ‘중년’일까? 아마 따분한 성격을 강조하려고 그렇게 설정한 모양이다. 중년의 백인 여성이라니, 당장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이 떠오르지 않는가?
8.
내가 픽사Pixar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지점이다. 도덕 선생처럼 굴지 않는다. 굳이 우리의 편견을 깨뜨리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떠다니는 편견을 그냥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판단은 관객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감동하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재하는 편견과 불평등을 스스로 찾아낸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문제다. 프로파간다가 좋은 예술이냐 나쁜 예술이냐를 떠나서, 요즘 사람들은 프로파간다라고 생각되면 아예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선전하려는 방향으로는 안 본다는 거다. 디즈니, 듣고 있나?
9.
사실은 본편이 상영되기 전에 틀어준 단편 〈토끼굴Burrow, 2019〉이 더 좋았다는 후문. 쿠키 영상까지 묶어서 내 별점은 여섯 개다. 5점 만점이다.
10.
예술이 어려워야 할 이유도,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고 톨스토이 옹의 문장을 하나 더 인용하며 마무리.
“예술은 형이상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라든지 신이라든지 하는 어떤 신비적인 관념의 나타남도 아니고, 생리학적 미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축적한 에너지의 여분을 발산시키는 유희도 아니다. 또한 외면적인 부호에 의한 감정의 발로도 아니고, 즐거운 대상을 만들어 내는 일도 아니며, 특히 쾌락 따위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것은 개개 인간 및 인류의 생활과 행복에의 발걸음에 없어서는 안 될 인간 상호 간의 교류 수단이요, 모든 사람을 동일한 감정으로 통일하는 수단이다.”
(시사문단 21년 3월)
미국의 과학 시트콤. CBS에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하였다. ↩︎
에밀 아돌리노Emile Ardolino가 감독한 미국의 코미디 영화. 1992년에 개봉하였다.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가 주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
데이미언 셔첼Damien Chazelle이 감독한 미국의 음악 영화. 2014년에 개봉하였다. J. K. 시몬스J. K. Simmons가 출연하였으며, 아카데미 영화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
야구치 시노부矢口史靖가 감독한 일본의 음악 코미디 영화. 2004년에 개봉하였다. 13명의 여고생을 주축으로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본 아카데미 영화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