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라 - 점으로 완성해낸 빛의 혁명

2024년 9월 5일 5674자 완독 4분 소요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지상 목표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연의 무질서한 인상을 사진처럼 포착하려 시도했다. 이는 아카데미 회화를 넘어 근대 예술의 주된 흐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그간 유럽의 예술계에서는 머리로 이해하고 재구성한 대상만이 사실적인 것으로 대우받고 있었던 것이다.

인상주의의 기치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법이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한 화가들은 대안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사실주의로 회귀하지 않으면서도 질서를 추구하려는 것으로, 분명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여러 화가 중에서도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는 색다른 해법을 모색한 인물이었다. 그는 점으로 이루어진 색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대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색채론에 근거를 둔 기법이었다. 이로써 쇠라는 빛의 움직임을 재현해 내는 인상주의 기법에 과학적인 색채 이론을 입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를 가리키는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라는 용어가 그 독특한 위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쇠라의 채색 기법은 흔히 점묘법點描法으로 번역되지만, 이는 점을 찍어 대상을 묘사하는 기법을 통칭하는 것으로서 쇠라의 기법에 대한 정확한 번역어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기법을 번역할 만한 이렇다 할 합의가 없어 대체로는 점묘법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쇠라의 점묘법pointillism은 색채의 병치 혼합과 보색 대비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화가는 기본적으로 원색의 물감을 섞어서 다양한 혼합색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물감을 섞을수록 색이 어둡고 탁해지는 감산 혼합減算混合의 원리를 따른다. 반면 인상주의 화가들이 동경했던 자연의 빛은 여러 색이 섞일수록 밝아지는 가산 혼합加算混合의 원리를 따른다.

이는 인상주의 화가에게 일종의 딜레마가 된다. 자연의 빛을 표현하기 위해 원색 물감을 고집하는 인상주의 화가는 오히려 눈에 보이는 색상을 온전히 나타낼 수 없는 귀결에 이른다. 반대로 물감을 섞어 타협하는 화가는 빛의 밝고 생생한 색감을 잃고 마는 것이다.

쇠라는 원색의 점을 분할하여 배치하는 방식으로 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했다. 가령 빨간색과 노란색 점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도형은 멀리서 보면 두 색의 중간색인 주황색의 면으로 인식된다. 이것이 병치 혼합竝置混合이며, 이는 눈의 착각을 이용한 일종의 우회로였다.

▲사진: 조르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주일 오후〉 (1884-1886)

쇠라가 찍은 점들은 우리 눈에서 완전히 혼합되지 않고 흩뿌려진 모래알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단점으로 볼 수도 있으나, 쇠라는 이조차도 빛의 생생함을 표현하기 위한 효과로 활용하였다. 그는 빨간색과 대비되는 초록색이나 파란색과 대비되는 노란색 등으로 보색 대비를 주어 이러한 효과를 증폭시켰다. 모래알 사이사이에 삽입된 보색의 점은 배경색의 명도와 채도를 더욱 높이면서 반짝이는 빛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데 기여하였다.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도 대상이 도드라지게끔 보색을 활용하곤 하였으나, 색채 자체를 부각했다는 점에서 쇠라의 접근법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이렇게 표현된 색채는 근본적으로 병치 혼합의 산물로서, 대상의 눈에 보이는 특질뿐만 아니라 대상의 본질적인 질서까지도 재현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쇠라가 점묘법에 사용한 원리는 오늘날 컴퓨터 그래픽의 기본 원리와 매우 유사하다. 초창기의 4비트 컴퓨터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화소(점)마다 16가지 색상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색상마다 4단계의 명암 표현을 줄 수는 있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모두 64가지의 색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쇠라가 실제로 사용했으리라 추측되는 색상의 수와 근사하다.

컴퓨터 그래픽에서는 화소가 모래알처럼 분산되어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색상을 덜 규칙적이게끔 배열하는 방식으로 병치 혼합을 최소화했다. 이렇듯 표현된 색상은 다소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색감 자체는 미려하게 구현된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독특한 효과는 이후 팝아트 화가들이 즐겨 활용하기도 했다.

쇠라가 요절한 탓에 그의 화법은 아무에게도 직접 전수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인상주의는 이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계승되면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원문: 한국투데이 최은광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