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코미디언Comedian〉은 바나나를 벽에 붙여 놓은 작품이다. 바나나 모형이 아니라 진짜 바나나를 붙여 놓은 것이다. 이것을 본 관객 중 하나가 장난삼아 바나나를 떼어서 먹어버렸다. 이 행동에 대한 작가의 대응이 압권이다. 카텔란은 말없이 다른 바나나 하나를 가져다 원래 자리에 붙여 놓았다. 어차피 건축용 덕트테이프Duct Tape로 고정해 놓았던 것이기에 별로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선택만 하면 예술이 된다지만, 이쯤 되면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12만 달러, 우리 돈으로 1억 6천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으로 팔리며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기존 미학의 규칙을 깨뜨리고 전통 예술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그 메시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거나 아이디어 아닌가. 바나나를 담벼락에 붙인다는 시시한 아이디어 하나로 카텔란은 평범한 직장인의 몇 년 치 연봉을 벌어들인 것이다.
이것은 동시대 예술을 어렵게 만드는 극히 일부의 사례에 불과하다. 전통 예술의 메시지는 대개 분명하다. 반면 현대예술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모호하며, 관람자에게 높은 해석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의미에 접근하기 위해 미적 지식을 넘어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작가 자신은 이 주제를 알고서 표현하느냐는 관객의 의구심은 부분적으로 정당하다. 작가라 하여 작품이 관련한 맥락을 꿰뚫고 있기는 어려우며, 작가가 상상한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는 작품 해석도 분명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 예술이 어려운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설명하는 문장만큼은 쉬워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동시대 예술 관람을 시도해 본 많은 이들이 절감하듯, 현실은 그저 냉혹할 따름이다. 동시대 예술을 설명하는 말과 글은 쉽기는커녕 오히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대체 무슨 까닭일까? 예술가들이 관람객을 엿먹이려 드는 것일까?
예술 현장에서 바라본 문제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저 예술가들이 지독히도 글재주가 없을 따름이다. 요즘 세상에 의도적으로 관객을 골탕 먹이려 들 만큼 간 큰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한편으로는 이들도 피해자다. 예술가들은 비평가들에게 지적으로 밀린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술가들의 글은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턱없이 주관적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필요 이상으로 맞서거나 아예 회피해 버리는 것이다. 이미 작품은 개념적으로 충분히 복잡한데, 이런 상황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더욱 골치 아프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글이 어려운 이유도 이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로서, 평론가들의 글은 그렇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작품의 어려운 개념을 받아들이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이들의 역할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전문 예술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지 않는 평론가가 훨씬 많다. 그리고 이는 평론가를 탓할 수만도 없는 문제다. 분명 동시대 예술계에서 대중을 설득하는 작업이 평론가의 주된 임무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텔란에 대한 설명이 이런 식이라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대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시각 예술에 대한 감각은 미학적이기 전에 인류학적이고 의식적이며, 오늘날에는 낡은 페티쉬에 꾸준히 비난을 가하기보다 수다를 떠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 로베르토 아고Roberto Ago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제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