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론은 ‘추상’을 포섭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다. 현대의 소위 추상적 양식이란 수천 년의 서양미술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빈 캔버스에 선 하나만 그어 놓은 작품을 모방론이나 표현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를 예술이 아니라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술정의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렇듯 형식적 요소만 지닌 작품을 예술로 분류하려는 것이 형식론의 시도이다.
형식론은 비교적 최근의 이론이기에 그 주창자가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클라이브 벨Clive Bell이다. 그가 형식론을 설명하며 제시하는 개념은 ‘유의미한 형식significant form’이다. 예술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술이란 의미가 있는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라는 답변을 준 셈이다.
형식에 ‘의미가 있다’ 함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가령 작가가 캔버스에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이러저러하게 배치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이다. 단순한 사각형과 기본색만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는 본래 용암과 호수, 유채꽃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의 노란 사각형은 사실 유채꽃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만 남긴 이 작품에서 그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유추해 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상의 조화나 대칭 등 형식적인 특성이 감상자에게 특별한 쾌감을 준다.
몬드리안의 구성은 감상자에게 조화와 안정을 느끼게 해 주는 매력이 있으며,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결국 아름답다는 생각에도 이르게 만든다. 이 구성이 형식적으로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클라이브 벨이 말하는 ‘유의미한 형식’의 구현 사례다. 이에 따르면 감상자는 극히 추상적임에도 ‘완결된 형식’에서 오는 미적 감동을 느끼게 된다.
상술했듯 형식론은 현대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포섭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다. 그러나 현대예술의 외연이 빠르게 확장하면서 형식론은 곧 빛을 잃게 되었다. 애초 이러한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던 것이다. 이후 예술정의론은 한동안 이렇다 할 발전을 이루지 못한 채 정체된다. 예술 정의론이 다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제도론이 등장한 이후부터다.
오늘날 형식론은 현대예술 이외의 영역에서 더 힘을 얻고 있다. 이집트 미술이나 중세 미술 등 전통적 관점에서 폄하되던 작품이 형식론의 관점에서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령 중세의 인물화는 일견 인체 비례나 원근법을 전혀 준수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형식론의 관점에서 이를 작가의 의도적인 구성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해석 가능성이 열린다. 형식론은 뜻밖의 지점에서 예술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