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도주의의 정치철학적 함의

2018년 6월 20일 51670자 완독 27분 소요

Elinor Ostrom,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 of Collective Action (《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자원 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윤홍근·안도경 옮김) 서평


들어가며

1990년에 출판된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의 《공유의 비극을 넘어Governing the Commons》(이하 《공유》)는 공유자원 관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이 같은 이유로, 오스트롬의 신제도주의the new institutionalism 접근법은 주로 경제학적·사회학적 관점을 중심으로만 분석되어 왔다. 그러나 오스트롬 자신이 그 연구 지평을 경제학이나 사회학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철학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신제도주의는 단순히 현실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추상적인 철학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나는 그의 이론에 함축되어 있는 정치철학적 반정초주의anti-foundationalism를 이해할 때 신제도주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독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추상화와 이상화를 주된 방법적 도구로 사용하는 사회과학적 접근법은 정초주의의 함정에 쉽사리 빠져들지만,1 다른 한편으로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직접 다루는 사회과학의 특성상 이러한 약점은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스트롬은 《공유》에서 사회과학자들이 범할 수 있는 이 같은 자기모순적 오류를 지적함과 동시에 사회과학에서 반정초주의적 관점을 채택하는 일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지만, 그 정치철학적 함의는 뚜렷이 포착되지 않는다. 나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오스트롬의 《공유》 및 신제도주의를 독해하고, 제기 가능한 비판에 맞서 그의 입장을 변호할 것이다.



1. 신제도주의: 공유자원 관리를 위한 제3의 길

《공유》는 이른바 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을 해결 또는 해소하려는 전통적인 노력이 공유자원에 대한 중앙정부 또는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34쪽2과 공유 개념을 무너뜨리고 시장 논리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입장38쪽으로 단순히 양분되는 데 대한 불만에서 출발한다. 오스트롬의 비판의 핵심은 전통적인 두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이론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고수한다는 것이다.

공유재의 딜레마로 추정되는 구조를 가진 경험적 상황을 발견한 분석가들은 종종 외부 행위자에 의한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선다. 공유재의 딜레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X를 행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주장은 공유재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 X가 필요하고, 또 이로써 충분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그 X의 내용은 정말 다양하다. … 만일 어느 하나의 권고가 옳다면 다른 하나는 옳을 수 없다. 상반되는 명제가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이다.41-42쪽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그의 신제도주의는 흔히 국가와 시장이라는 전통적인 두 입장을 절충하거나 넘어서는 제3의 길로 평가되지만411쪽 역자 해제, 이러한 성격과는 별개로 중요한 점은 오스트롬이 신제도주의를 절대적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유》의 역자들 역시 이 같은 점을 지적한다. “국가나 시장이라는 해결책이 종종 위험한 것은 그러한 해결책을 외부로부터 강요하려는 사람들이 문제의 구체적인 성격을 분석하지 않고 만병통치약과 같은 정책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412쪽이므로, 오스트롬의 제3의 길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정형화된 해결책이 되어 다양한 문제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채택되는 만병통치약으로 이해”411쪽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신제도주의는 전통적인 두 입장을 화해시키는 모습을 취하여, 부분적으로는 공유자원을 통제하고 부분적으로는 자원 공유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각 입장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경제의 문제점은 ‘공유의 비극’의 잘 알려진 귀결처럼 자원의 고갈을 야기하거나 적어도 독과점의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인데, 신제도주의는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사용자들에 의한 자치’라는 보다 약화된 감시·통제기구를 도입한다. 이는 한편으로 중앙정부의 통제가 갖는 문제점인 비탄력성을 함께 해소하고 있기도 하다.

신제도주의가 도입하는 여러 장치 중에서도 이렇듯 약화된 자치적 통제기구는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스트롬은 “좋은 규칙이 있다고 해서 사용자들이 이를 지킨다는 보장은 없”177쪽으며 “사전에ex ante 규칙에 따르기로 합의하기는 쉽지만 사후에ex post 강한 유혹이 있을 때 실제로 규칙을 준수하는 것”177-78쪽이야말로 의미가 큰 성취라 믿는다. 이러한 성취를 위하여 오스트롬이 의존하는 것은 마거릿 레비의 ‘준자발적quasi-voluntary 순응’ 개념이다.

레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시스템에서 납세자들의 행동을 기술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한 바 있다. 여기서 세금 납부가 자발적이라 함은 직접적인 강제가 없는 상황에서 납세자들이 일단 납세의 의무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준자발적’이기도 한데, 그것은 비순응 행위가 적발되면 공권력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는 의미에서다. … 각자의 순응은 다른 사람들의 순응 여부에 달려 있다. 어느 누구도 ‘순진한 바보sucker’가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 레비의 이론에서는 규칙의 강제적인 집행이 예측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규칙을 따를 경우 ‘순진한 바보’가 되지는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180-81쪽

오스트롬은 이러한 준자발적 순응이 자치에 의한 통제기구에 의하여 발현될 때 더욱 유연하고 효과적인 귀결을 낳고 있음을 여러 예시를 통하여 보여준다.4 공동체 내에서 선발된 감시자들은 기회주의혹은 책략적 자기 이익self-interest with guile, 80쪽를 적발하고 처벌하지만, “평소에 규칙을 잘 지키는 [구성원]들의 규칙 위반에 대해서 그렇게 요란법석을 떨지 않”149쪽고 “우연한 위반 행위는 … 조용하고 단순하게 처리[하]기도”137쪽 하는 등 상당한 재량을 발휘할 묵시적·명시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 때로는 감시자에게 “감시 활동 수행에 대한 개인적 보상”182쪽이 주어지고 “고정급 대신에 최종 수확량의 일정 비율이 지급되”293쪽기도 한다.

나는 이 같은 자치적 혹은 자발적 감시 체제가 넓은 의미의 반정초주의에서 직·간접적으로 파생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오스트롬은 “제도가 ‘시장’과 ‘국가’의 도식적인 이분법에서처럼 완전히 사적이거나 완전히 공적인 경우는 거의 없”43쪽음을 일관되게 지적하며 “현실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에 기초한 해법의 실패”54쪽를 경계한다. “획일적 규칙을 가지고서는 현지 공유 자원 체제의 긍정적 측면을 활용할 수도 없고, 어느 한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형태의 어려움을 피할 수도 없다”172-73쪽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오스트롬이 추구하는 것은 구체적인 ‘규칙’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틀을 설명해낼 수 있는 ‘디자인 원리’이다.5 자치적 통제기구는 이러한 디자인 원리의 주요한 일부로서 기능한다. 이하에서는 자치적 통제기구가 전제하고 있는 반정초주의적 요소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하겠다.6



2. 신제도주의에 내재된 반정초주의적 요소

신제도주의가 주된 원리로 파악하는,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집합 행동”60쪽은 적어도 세 가지 전제를 포함한다. (1) 우선 개인적 수준에서 이는 광범위하며 굳건한 인성broad robust characteristic을 상정하지 않는 상황주의 규범 이론situational normative theory을 전제한다. (2) 나아가 개인 간의 관계에 기초한 합리적 선택 수준에서 이는 강한 의미의 합리성이 아니라 보다 가변적이고 넓은 합리성 개념을 전제한다. (3) 마지막으로 사회 원리의 수준에서 이는 특정한 모델을 상정하는 이상론ideal theory 대신 실제적인 현실 상황에서 출발하는 비이상론non-ideal theory을 전제한다. 이들 반정초주의적 전제는 함께 맞물려 작동하면서 신제도주의의 주요한 원리인 자치적 통제기구의 반정초성을 담보하며, 나아가 신제도주의 자체의 반정초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1) 상황주의 규범론

오스트롬은 자치적 통제기구의 적절한 작동을 담보하는 요소로 ‘규범’을 언급하는데, 여기서 거론되는 규범의 용법은 일반적인 도덕이론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사람들이 약속 준수와 같은 규범을 깊숙이 내면화하면 약속을 어길 때 수치심을 느끼거나 죄의식을 가지게 되어 괴로울 것이다. 만일 이러한 규범을 타인들과 공유하고 있다면 규범을 어긴 사람은 내적인 수치심과 죄의식에 더하여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780쪽 오스트롬이 보여주는 공유자원 공동체의 여러 예시는 많은 성공적인 공유자원 체계에서 이 같은 규범이 고도로 발달해 있음을 확인케 해준다.

오스트롬의 규범론이 전통적인 도덕이론과 크게 갈라지는 지점은 그가 규범을 말하면서도 ‘개인’의 도덕성을 거의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구체적인 개인에 따라 도덕성 혹은 규범 준수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오스트롬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강하게 믿고 있는 것은, 한 공동체에서 구성원의 행동 방향은 그 행위에 대해 공동체가 처해 있는 상황 및 공동체가 채택하는 규범의 강도에 따라 거의 직접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일군의 사람들에 의해 강하게 금지되는 행위는 … 그 행위가 비난받지 않는 공동체의 상황과 비교하여, 훨씬 낮은 빈도로 발생할 것이다.”80쪽 이는 인간의 도덕성이 “일관적인 기질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8는 상황주의 도덕론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9

이를 통하여 오스트롬은 “딜레마 상황에서 탈피할 수 있는 개개인들의 역량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점”43쪽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만약 공동체 구성원의 행위 선택 전략이 구성원 각자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공동체의 제도는 각 구성원에게 올바른 규범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줄만한 적절한 지침이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구성원의 행위 선택이 각자의 관계와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다면 좋은 제도는 곧 좋은 행위를 낳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공적’인 제도란 무임승차와 의무 태만의 유혹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개인들에게 생산적 결과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를 말한다.”1043쪽

한데 상황주의 규범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규범 교육 가능성이 곤란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상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도덕적 인간의 일관된 인성을 가정할 수 없다면 공동체의 규범을 구성원에게 교육하여 전파할 가능성도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11 이에 대한 오스트롬의 해결책은 보다 넓은 의미의 합리성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분명 광범위하며 굳건한 인성을 가진 도덕적 인간을 가정한다면 칸트주의적인 합리성을 상정하는 일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오스트롬이 도입하는 광의의 합리성은 규범의 교육 가능성과 반정초주의를 매끄럽게 연결하고 있다.



(2) 광의의 합리성

흔히 합리성이란 칸트주의적인 직관 아래 ‘모든 인간은 공통적인 관념이나 원칙을 갖고서 출발한다’는 신념에서 도출되는 것으로서 인간을 인간 아닌 동물로부터 구분해주는 특별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12 그러므로 오스트롬이 일반적인 용법 하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위 선택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전술한 상황주의 규범론 하에서 인간의 규범 선택 전략은 본능에 따라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개미나 꿀벌의 전략과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오스트롬은 여기서 칸트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합리성 개념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오스트롬은 자신의 합리성 개념이 “협소한 것이 아니라 아주 광의로 정의된”82쪽 것이라 진술하고 있다.

칸트주의적이지 않은, 광의의 합리성은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선 흔히 자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합리성의 지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코끼리는 외부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여 생존했다는 점에서 매머드보다 더 합리적일 것이며, 공동체의 규범을 준수하는 구성원은 환경에 더 복잡하게 대처한다는 점에서 그렇지 못한 구성원보다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13 이러한 합리성은 ‘선택적 합리성’으로 명명해볼 수 있겠다.

선택적 합리성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반정초성을 띠는 합리성 개념의 제안으로는 무리가 없다. 그리고 이는 합리성을 규범적인 중립성을 지니는 개념으로 설정하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합리성 개념은 인간과 동물을 규범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로티Richard Rorty는 또 다른 방향의 합리성 개념을 제안하는데, 이는 ‘관용’ 및 ‘자유’와 대치될 수 있는 어휘로서 ‘합리성’을 사용하자는 것이다.14 이는 ‘인본적 합리성’으로 볼러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이르러 ‘합리성’은 칸트주의적인 정초주의를 함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성까지 가미하는 개념으로 재구성된다.

오스트롬이 제안하는 합리성 개념이 로티의 이러한 마지막 제안을 실제로 함축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합리성의 원칙을 ‘거의 내용이 없는 원칙’으로 만들라는 포퍼의 조언에 충실”84쪽하려 했다는 오스트롬의 고백을 솔직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는 인본적 합리성보다 선택적 합리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더불어 오스트롬의 이론이 사회적 선택 이론에 직접적인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가 취하려 했던 합리성 개념은 선택적 합리성이었으리라 가정하는 편이 여러모로 매끄러운 해석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롬의 합리성 개념이 인본적 합리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해볼 수 있을 만한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인본적 합리성 개념을 취하더라도 오스트롬 신제도주의의 전체적인 기획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하자. 오스트롬은 “규범이 전략의 선택에 미치는 가장 중요한 영향은 다른 사용자들에 의한 기회주의적 행동 수준에 대한 예측과 관련이 있다”80쪽고 보면서도 “사람들을 가능한 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존재로 간주”60쪽하고, 생물학자들이 ‘유기체’를 다루는 방식처럼 자신은 “인간의 존재 상황들 중 하나를 다룬다”61쪽고 생각한다.15 그리고 신제도주의 하에서 유기체로서의 인간 공동체는 효과적인 문제해결을 위하여 제도를 창안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홉스Thomas Hobbes에 대한 재해석 아래 이는 관용과 자유로서의 합리성이 존재하는 양상과 유사한 귀결에 이른다.

어느 한 행동을 금지하거나 요구하는 규칙이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그 행위를 허용하는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홉스가 논의했던 자연 상태는 어떠한 행위나 결과를 요구하거나 금지하는 아무런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즉, 홉스의 자연 상태는 누구나 원하는 모든 행동을 그 행동의 영향력과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칙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과 논리적으로 같다. […] 홉스주의적 상황에서 현상 규칙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부재 규칙으로 볼 수 있다. […] 현상 규칙 하에서 모든 반복되는 상황이 특징이라고 전제한다면 제도 공급의 개념은 이른바 신제도의 ‘창안’뿐 아니라 기존 제도의 변경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그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제도의 창안과 제도의 변경은 종종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 아주 쉽고, 비용이 거의 들지 않을 수도 있다.255-57쪽

나는 이러한 단서를 유리하게 해석하여 오스트롬의 신제도주의가 인본적 합리성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주장을 지지하려 하지만, 선택적 합리성이나 인본적 합리성 중 어느 방향의 합리성 개념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반정초주의적 함의를 이끌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합리성이 어떻게 공동체의 제도를 확립시키는 데 기여하는지, 혹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규칙을 도입할 수 있으며, 이러한 규칙에 대하여 준자발적 순응을 확보하고, 상호 간 규칙 이행 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가”332쪽 여부로서, 오스트롬은 사회적 수준의 비이상론에 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3) 비이상론

이상화는 특수한 가설적 상황hypothetical situation을 도입하여 모종의 도덕적 상황이 문제가 되는 어떤 대상에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일 수 없는 어떤 성격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작업을 말하며,16 이상론은 이러한 이상화를 주된 방법적 도구로 삼는 이론을 일컫는다.17 오스트롬은 고정불변하는 소수의 몇 가지 변수만을 상정하는 이상론이 지니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특정 행위와 관련하여 ‘완전한 정보’를 가정하는 것은 분석가들에게 실제 상황 속의 개인들이 어떻게 정보를 얻고, 누가 무슨 정보를 가졌으며, 정보가 편향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문제를 검토하도록 압박하지 않는다. ‘독자적 행동’을 가정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사람들이 염두에 두는가 하는 문제를 정책 분석가가 탐구하도록 압박하지 않는다. ‘제로 비용의 감시 활동’을 가정하는 것은 여러 다양한 감시 활동 규칙의 비용과 효과성을 검토하도록 분석가를 압박하지 않는다. ‘고정 불변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규칙을 변화시키는지 그렇지 않은지, 또 어떻게 이를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외부의 정치 체제 요소들이 제도 변화를 촉진하는지 방해하는지 등에 대하여 검토하도록 분석가들을 압박하지 않는다.343쪽

오스트롬에 따르면 “이 모델들은 틀렸다기보다는 극단적인 가정을 이용하는 특수 모델로서 일반 이론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329쪽 “이들 모델들은 자신들이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경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보여”주며, 이렇듯 “상황 구조를 불변 혹은 ‘외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모델에 입각한 정책은 상황 밖의 누군가가 그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정책 권고로 이어”331쪽지지만, 정작 공동체 내부의 역량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오스트롬의 생각이다. 즉 이러한 모델은 “사람들이 자치권을 가지고 고유의 제도를 고안할 수 있고, 서로의 규범이나 기대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서”, 또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결과를 안겨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혁신가들의 역량이 정치 체제 내의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어떻게 고양되거나 봉쇄당하는지에 대해서”331쪽 알려주는 바가 거의 없다. 오스트롬이 우려하는 이상론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이른바 ‘신의 관점’을 상정할 수밖에 없도록 연구자를 인도한다는 점이다.

정책 분석의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데에 따르는 지적 함정은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의 관찰자로 가정하여, 복잡하고 역동적인 체제의 몇몇 양상에 대한 상투적 기술을 행하는 것으로써 마치 이 체제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모든 핵심적 사항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지’를 전제로 한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학자들은 모든 실제 상황에 존재하는 결함을 교정할 수 있는 ‘전능’의 힘이 자신들의 모델에 있는 것인 양, 정부에 대하여 제안서를 제출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380-81쪽

물론 이상론자는 비록 현실에서 당면하는 긴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이상론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18 이상론에 대한 합의만 공유하고 있다면 구체적인 여러 상황에서 적절한 의견 일치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상론자의 믿음이기 때문이다.19 따라서 가령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에서는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논하는 일이 정의론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속한다.20 그러나 이상론이 “충분치도 필요치도 않다neither sufficient nor necessary21는 센Amartya Sen의 선언을 구태여 상기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완벽한’ 이상론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단지 현 상태보다 조금 더 개선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는 전략이 가능하리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22

이러한 점진적 발전은 우선 규범 정보에 대한 누적적인 공유에 의하여 가능해진다. 가령 공동체 내에서 “맞대응tit-for-tat 전략을 따르는 경기자는 첫 라운드에서 일단 협동한 후, 그 다음 라운드부터는 상대 경기자가 이전 라운드에 했던 행동을 그대로 본뜬다.”82쪽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실행 규범 혹은 규칙이 수립된다. “실행 규칙이라는 것은 공유된 지식이며, 감시되고 집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유된 지식은 각 참여 구성원들이 규칙을 알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규칙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이 규칙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의미한다.”107쪽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점진적 발전은 공동체 내 규범 위반 행위에 대한 ‘점증적’인 제재에 의해서도 촉진된다. 전술했듯 “우연하고 간헐적인 과오나 실수에 대해서는 용서해 주는 규칙 집행 방식으로, 사용자들은 변화하는 불확실한 환경 하에서 획일적 규칙의 경직된 적용이 초래하는 높은 비용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계속되는 규칙 위반에 대해서는 제재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334쪽 반면 여기서 이상론자가 그러하듯 “[구성원 사이에 공유되는] ‘완전한 정보’를 가정하면 사람들이 왜 규칙 준수 여부를 서로 감시할까 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곤란하다.”341쪽 그 대신 신제도주의는 다소 불완전한 정보의 공유 양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낳는 동태적인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23



3. 신제도주의를 위한 정치철학적 변론

이상에서 논의한 관점을 바탕으로 신제도주의에 대한 몇 가지 우려 및 비판에 접근해보자. 우선 공유자원에 대한 지배권을 오스트롬이 제안하는 대로 이를 사용하는 지역공동체 구성원에게만 전적으로 맡기는 일이 과연 정당하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한 비판의 밑바탕에는 공유자원의 유일한 공급 주체를 자치조직으로 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는 독과점 구조가 형성되어 사회적 잉여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오히려 ‘국가’나 ‘시장’을 통한 전통적인 해결 방식이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 이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의 시각이다.24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오스트롬의 제안을 ‘절대적’이고 정초주의적인 기획으로 오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실제로는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앞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듯 오스트롬은 고정적인 문제 해결 모델에 의존할 생각이 없으며, 그의 신제도주의는 구체적인 개별 상황마다 그의 ‘디자인 원리’에 따른 제도 형성을 필요로 하는 이론인 까닭이다. 오스트롬이 지적하듯 “집합 행동을 모형화하는 하나의 ‘올바른’ 길은 없다. 서로 다른 모형들은 서로 다른 가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각기 내용적으로 다른 결론에 이른다.”105쪽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오스트롬은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다만 그는 이를 문제 해결의 정초로 삼으려는 기획만큼은 끝끝내 거부할 것이다.

오히려 쉽게 물리치기 어려운 비판 중 하나는 오스트롬의 이론이 한국 사회에 적실성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25 오스트롬이 자인하듯 그의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된 사례는 “개별 국가에 위치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공유 자원 체계들로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해도 사용자의 수가 1만 5천 명 정도”327쪽이고, “그 이용자들이 상호 간 제법 해를 가할 수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참여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에게 큰 규모의 외적 위해를 초래하게 할 수는 없는 상황”62쪽을 가정한다. 1만 5천 명 정도를 수용하는 한국의 지방자치 조직은 ‘동’ 하나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정도 규모의 지방자치 조직이 외부의 간섭 없이 자생하고 있는 예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스트롬의 ‘디자인 원리’에 따라 이들의 상황에 맞는 제도를 고안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디자인 원리’ 자체의 적용 가능성부터가 매우 요원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으로서는 “각 사례의 환경과 역사적 발전의 상이성을 감안”할 때 “이들 사례에서 활용된 규칙들이 동일하리라 기대할 수 없”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123쪽다는 오스트롬의 분석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오스트롬이 제시한 공동체의 사례에서 구성원들은 “가용정보, … 주어진 자원 등을 감안하여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115쪽 이를 위해서는 한국적 토양에 맞는 제도론을 창안하기 위해 무엇보다 다수의 실증적 연구가 선행될 것이 요구된다.26 오스트롬에 의하면 소규모 그룹이든 대규모 집단이든 공유자원을 규율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정초주의적인 제도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338쪽



나가며

오스트롬은 ‘자력 부담의 계약 이행 게임’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여러 상황 속에서 많은 약점을 지니며, 따라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49쪽. 그러나 바로 이 ‘만병통치약 될 수 없음’이라는 통찰은 반정초주의의 중요한 핵심을 포함한다. 공유자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하거나 사유재산권을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는 확신에 대항하여, “[오스트롬의] 연구가 이러한 확신을 뒤흔들어 놓았다면 연구 목적의 하나를 성취한 것이다.”328쪽 이상론에 근거한 전통적인 정초주의적 기획은 “현실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에 기초한”54쪽 탓에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던 반면, 오스트롬의 반정초주의적 기획은 “경험적으로 타당한 이론의 개발에 기여”60쪽하고 있다.

정치철학적 반정초주의는 철저하게 현실에서의 경험에 근거하여, ‘지금 현재’의 상황을 좀 더 낫도록 개선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이는 일견 사회과학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상화된 모델을 이용한 접근법에 매력을 느낀 사회과학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상론이 필연적으로 함의하는 정초주의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현실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을 외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을 믿는 정신분열증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치철학적 반정초주의를 함축하는 오스트롬의 신제도주의는 바로 이 같은 병리적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강은숙·김종석. 2016.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 최은광. 2013. 〈상황주의의 도전에 대한 덕윤리의 반론: 실제적 덕윤리의 입장에서」, 《도시인문학연구》 5권 2호, 195-222쪽.
  • 최은광. 2014. 〈센의 역량이론과 롤스 정의론의 양립가능성: 이상론과 비이상론 논의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서울: 서울대학교.
  • 최은광. 2016. 〈하버마스 담론윤리의 이상화 전략」. 《윤리연구》 109호, 85-110쪽.
  • Crittenden, Jack and Peter Levine. 2018. “Civic Educatio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dward N. Zalta (ed.). URL=https://plato.stanford.edu/archives/fall2018/entries/civic-education/.
  • Ostrom, Elinor. 2010. 《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자원 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윤홍근·안도경 옮김. 서울: 랜덤하우스 코리아.
  • Plato. 2011. 《프로타고라스》. 강성훈 옮김. 서울: 이제이북스.
  • Rawls, John. 1971. A Theory of Justice. Original ed.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 Rorty, Richard. 1992. “A Pragmatist View of Rationality and Cultural Difference”, Philosophy East and West, 42(4): 581-96.
  • Rorty, Richard. 2007. Philosophy as Cultural Politics. Cambridge;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 Sen, Amartya. 2006. “What Do We Want from a Theory of Justice?”. The Journal of Philosophy 103(5): 27-50.
  • Sen, Amartya. 2009. The Idea of Justice.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미출간)


  1. 추상화와 이상화, 그리고 이들 개념과 정초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최은광, 〈하버마스 담론윤리의 이상화 전략」, 《윤리연구》 109권, 2016 참조. 특히 추상화와 이상화의 구분에 대해서는 같은 책 88-89쪽 참조. ↩︎

  2. 이하 《공유》에 한하여 본문 내 해당 쪽수를 명기하는 방식으로 표시한다. ↩︎

  3. 역자들은 이와 더불어 《공유》의 출간 이후 오스트롬이 “더욱 명시적으로 […] 어떠한 제도적 해결 방안이든 간에 일률적으로 모든 문제에 적용하려는 경향들을 비판해 왔다”412쪽는 점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

  4. 가령 스위스 퇴르벨 고산 지대 목초지126-33쪽, 일본의 히라노·나가이케·야마노카 마을 산림의 부락 공동 소유133-39쪽, 스페인의 우에르타 관개 제도139-60쪽, 필리핀의 자제라 관개 공동체160-70쪽 등. ↩︎

  5. 오스트롬이 정리하고 있는 디자인 원리는 (1)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173쪽 (2) 사용 및 제공 규칙의 현지 조건과의 부합성176쪽 (3) 집합적 선택 장치177쪽 (4) 감시 활동179쪽 (5) 점증적 제재 조치graduated sanctions, 179쪽 (6) 갈등 해결 장치189쪽 (7) 최소한의 자치 조직권 보장191쪽 (8) 중층의 정합적 사업 단위192쪽 등이다. 내가 주목하는 ‘자발적 통제기구’는 좁게는 (4) 내지 (6)과 관련되며, 넓게는 (8)을 제외한 모든 원리와 관련된다. ↩︎

  6. 논의에 앞서 확인해 두어야 할 지점은, 사회과학자로서 정초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것이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까닭이 없다는 점이다. 싱어Peter Singer의 도덕이론이나 푸코Michel Foucault의 사회이론이 보여주듯 잘 다듬어진 정초주의는 그 자체로 세계를 읽어내는 유용하고도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오스트롬의 관점을 빌어 이 글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정초주의 일반이라기보다 스스로 정초주의를 취하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분열증적schizophrenic 양상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자가 채택하는 관점이 스스로 채택하는 문제해결 방식과 충돌한다면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지만,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신제도주의의 반정초주의적 함의를 드러내는 데 더욱 주력할 것이다. ↩︎

  7. 이는 당연히도 게임 이론의 토대가 되는 합리적 선택 이론의 또 다른 기술 방식이다. 게임 이론을 지지하는 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이는 특별히 창의적인 주장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주5에서 지적했듯, 이 글에서 중요하게 보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주장이 신제도주의의 전체적인 반정초주의적 기획과 얼마나 정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

  8. 최은광, 〈상황주의의 도전에 대한 덕윤리의 반론: 실제적 덕윤리의 입장에서」, 《도시인문학연구》 5권 2호, 2013, 200쪽. ↩︎

  9. 상황주의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몇 가지 실험결과에 대해서는 앞의 책, 201-3쪽 참조. ↩︎

  10. 오스트롬은 한 제도가 성공적이라는 것을 “제도가 ‘본질적으로’ 균형 상태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그 제도의 변화 자체가 사전ex ante에 계획된 바에 따라, 즉 초기 제도의 일부로서 의도된 대로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한다121-22쪽. 이러한 관점에서 “사용자들이 공유 자원 환경에서 훌륭한 제도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기본 원리를 ‘발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123쪽 오스트롬은 “이러한 상황에서 디자인된 제도들이 어떤 의미로든 ‘최적의optimal’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전술한 의미에서 “아무 주저 없이 ‘성공적인’ 제도라 부를”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123-24쪽↩︎

  11. 이는 애초 《프로타고라스》에서 플라톤이 제기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한데 시민으로서의 덕이란 기술τέχνη이 아니며 따라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반박에 오스트롬이 대응하는 방식은 기술로서 가르칠 수 있는 범위만큼만을 유효하게 다루겠다는 것이다. Plato, 《프로타고라스》, 강성훈 옮김, 서울: 이제이북스, 2011, 314a-320c 및 Jack Crittenden and Peter Levine, “Civic Educatio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18 Edition), Edward N. Zalta (ed.), URL=https://plato.stanford.edu/archives/fall2018/entries/civic-education/ 참조. ↩︎

  12. Richard Rorty, Philosophy as Cultural Politics, Cambridge;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44쪽. ↩︎

  13. Richard Rorty, “A Pragmatist View of Rationality and Cultural Difference”, Philosophy East and West, 42(4), 1992, 581쪽 참조. ↩︎

  14. 앞의 책, 같은 쪽. ↩︎

  15. 이로써 오스트롬이 궁극적으로 시도하려는 것은 “‘신제도주의’적 접근법을 취하는 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과 생물학자들이 생물 세계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경험적 연구 과정에서 활용하고 있는 전략을 결합시키는 것이다.”60쪽 ↩︎

  16. 최은광, 〈하버마스 담론윤리의 이상화 전략」, 《윤리연구》 109권, 2016, 89쪽. ↩︎

  17.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은 이 같은 이상화 작업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 하에서 정의 문제를 합의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뒤에 머무르는 까닭에 자신과 연관된 내외부적 여건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으로 가정된다. 여기서 롤스가 상정하는 두 가지 반사실적 조건counterfactual condition은, (1) 원초적 입장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정의에 대한 철저한 준수 의식full compliance을 가지며 (2) 그러한 구성원들이 머무는 공동체는 정의를 수호하는 데 우호적인 조건favorable conditions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상에서 만족될 수 없는, 철저히 이상적인 조건이다. 최은광, 〈하버마스 담론윤리의 이상화 전략」, 《윤리연구》 109권, 2016, 89쪽;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Original ed.,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245쪽. ↩︎

  18.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Original ed.,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8-9쪽. ↩︎

  19. 앞의 책, 246-47쪽. ↩︎

  20. 앞의 책, 9쪽 및 391쪽. ↩︎

  21. Amartya Sen, “What Do We Want from a Theory of Justice?”, The Journal of Philosophy 103(5), 2006, 217쪽; Amartya Sen, The Idea of Justice,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5쪽 및 15쪽. ↩︎

  22. 나는 여기서 이상론자와 비이상론자의 대결을 상세히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은광, 〈센의 역량이론과 롤스 정의론의 양립가능성: 이상론과 비이상론 논의를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서울: 서울대학교, 2014, 47-61쪽 참조. ↩︎

  23. 이를 제도의 시간 및 경로의존성이라 명명하는 견해도 있다. 강은숙·김종석,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78쪽. ↩︎

  24. 앞의 책, 85쪽. ↩︎

  25. 강은숙·김종석,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의 비극을 넘어》,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92-93쪽. ↩︎

  26. 앞의 책, 95-96쪽. ↩︎